|
용정에 그녀들은 없다. (2)
|
水晶 21
|
|
삿갓님께 감사 드려요.
덕분에 연통에서 많은 좋은 분들과 좋은 글들을 만나게 되어서
배움의 장이 되어서 너무 기쁘고 즐거웠어요.
지난번 계속입니다.
(집시의 핏방울이 섞인 그네들은 고향을 등지고, 두만강을 건너와 간도의 황무지를 옥답으로 개간했다. 다시 도진 방랑벽으로 그들이 빠져버린 터전을 왕서방님들은 몇 배로 메웠다. 항거할 수 없는 潮流로.)
3. 김진화
진화의 어머니는 충청도 출생, 아버지는 서울출생인 요리사셨다. 한때는 길림성의 추천으로 인민대회당에서 한식을 하셨는데 2남 3녀를 두셨다.
진화네가 우리넷과 다른 점은 "닦는다"를 "훔친다"고 했고, 즐겨 김치를 보글보글 끓여 드시는 것 뿐이었다. 동네에서 어른들은 서로를 북선사람, 남선사람이라 불렀다. 북도치, 남도치란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한 동네에 중국집이 한 두집만 있어서인지 우리와는 전혀 다른 思維와 방식으로 살아도 민족간의 갈등은 없었다.
남과북을 고향으로 둔 사람과 중국사람들 사이에 사소한 일로 다퉈도 언제 그랬냐 싶게 금방 화해하군 했다. 할일이 태산같은 오늘에 같은 단군의 후손들끼리 쪽에 쪽을 캐는데 왜서 이렇게도 이골이 나 있고 목숨을 거는지, 나는 죽여도 모른다.
진화는 우리 넷중, 오리무리에 든 수탉처럼 쭉쭉빵빵 잘도 빠졌고, 생김새는 위그르계처럼 어글어글한 쌍겹눈, 높은 코, 도톰한 입술을 소유하고 있었다. 총명해서 공부도 잘했고 용정2중 문예 선전대의 골간으로 안무도 했다.
아마 문혁이 없었으면 공무원이 아니래도 안무가는 되지 않았을가 싶다. 우린 서로의 집체호를 찾아가 보기도 했고 농촌에서 올라와 출근하면서 휴일엔 붙어 살다시피 하면서 작은 용정시내가 좁다고 활보했다.
진화는 친척의 소개로 길림시에서 간부로 있는 (연변사람)총각과 만나 결혼 후 길림백화점에 조동되어 갔다.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북경의 중점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마카오에서 근무하고 있다.
진화는 오늘도 남편과 4형제 자매들과 함께 수년째 한국에서 일하면서 마대로 돈을 끌어 담고 있다.
4, 허춘화
춘화의 아버지는 솜틀공장의 부기원이셨는데 2남 4녀를 두셨다. 단정한 오관, 커다란 쌍겹눈, 싱글싱글 웃기만 하는 착하고 말수 적은 애였다. 눈만 떨어지면 우리네보다 집도, 마당도 큰 그의 집에 가서 놀았고, 쩍하면 기찻길 건너 솜틀공장에 가서도 놀았다. 농촌에서 올라와 도문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고, 같은 직장동료와 결혼했단다.
아주 오래전, 거리에서 인자하신 춘화의 어머니와 만나서 안부를 물으니 "둘째애를 낳다 칠성판에 오를번 했단다(죽다 살아나다)." 고 말씀하셨다. 용정에서 몇차례 동창모임이 있었는데 모두들 그 녀의 소식은 모른다. 아마 어데선가 잘 살고 있겠지! 마음에 항상 그리고 있는데 언젠가는 만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5 . 나
나의 아버지는 량식국에서 근무하셨고. 1남 4녀를 두셨다. 당시 량식국은 현정부(일본총영사관)정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단층집에 있었는데 바로 앞이 영사관의 취조실이었다. 동생과 나에겐 그 주위가 놀이터였다.
우리 다섯 친구중 유일한 못난 새끼오리인데다 내성적이고 말재간이 없는 나는 제일 메케(멍청=바보)했다. 어릴적부터 아무 욕심도 없고, 무슨 생각도 없었다.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비술나무에 오르고, 돌차개 하고, 홍군백군을 따라했던 기억밖에 없다.
우리년대의 사람들은 여러가지 원인으로 배우자를 자기타입에 맞는 사람으로 찾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나처럼 똑똑하지도, 사리에도 밝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처럼 노실=부실한 사람한테 마음이 끌리던 시대였다.
과년한 나이로 다 큰 두 여동생과 부모님의 눈치가 보여서 외지총각과 결혼한다더라고 해서 딸 하나를 낳았다. 딸은 수년채 선전=심천에서 살고, 나는 이렇게 한국에서 강산이 변하도록 살고 있다.
연변동포들의 90%가 독생자녀이다. 중국인과 달리 왕자, 공주로 키우고 과잉보호를 해야기에 밑지는 장사라 둘 낳을 엄두를 못낸다. 그 하나마저 키워 놓으면 세상이 좁다고 모두들 중국내륙이나 외국에 나갔다. 나의 모든 조카들과, 동창생들의 절대 다수 자녀들은 용정에 없다. 우리들이 연변에 가서 뭘 좀 해 볼려해도 인력이 없다.
우리와 우리들이 빠져나간 기름진 자리를 중국 각지에서 온 왕서방, 계획생육(1자녀)을 피해 연변에 숱하게 밀려온 왕서방님들로 몇 배로 채워졌다. 호적에 올리지 못해도 뼈만 자라면 상등 노동력이 된다. 연길, 용정의 슈퍼마켓 등의 經商은 그들의 대가족과 한화로 매우 흥성하고 있다.
우리가 떠나도 다행히 그네들이 있기에 옥토는 여전히 오곡으로 설레이고 있고, 이름난 연변의 황소들이 살찌고 있다. 연길에 있는 나의 집도 수년째 중국인이 세들어 있고, 월세돈은 한 조선족에 기부금으로 쓰이고 있다.
남북통일을 대비하여 연변의 동포들은 땅만은 지킬지어다. 통일하기 전까지 오지인 연변을 고집하기 보담 모두들 중국내륙으로, 세계로 뻗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180만의 중국동포들은 불루오션인 중국에서의 귀한 인적자원이고 메드인 코리아의 홍보대사이다. 한국의 국익을 위하여 한국에 오래 거주한 중국동포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여 한국과의 끈을 놓아 한족으로 동화되는 일이 없게 하여야 하며, 그들에게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민주화 의식을 키워 주어야 할 것이다.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설마 중국의 토지가 개인소유라고 착각하는건 아니겠지요?
중국 헌법상 토지는 국가소유권, 즉 언제 거둬들이면 거둬들이고 농민은 경작의 권리밖에 없습니다.
판다 안판다가 아니라 사용권의 지배는 오로지 개인에 대한 임대와 국가에 대한 양도(개인향한 양도 불허 불법)입니다.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잘 보았습니다. 용정이라는 곳에 딱 한 번 본적이있는데..
용드레우물하나 찾는데 생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낮부터 취한 몇몇 젊은 사람들이 불량스럽기는해도..주위에 개천이 흘러서 정취가 있는 도시라는 인상이 들더군요.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룡정 태생이시군요.
우물에서 룡이 솟았다 해서 룡정이라면서요?
水晶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영리한 얜밴조선족들은 땅을 잘 팔았습니다.
땅을 팔았기에 외국도 가고, 도시에 아파트도 사고, 양꼬치를 먹고, 노래방 다니면서 향수를 누리고 있죠.
땅을 팔지 않았드라면 꿈도 못꾸는 인생 살지도 모릅니다.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
중화는 팔만한 땅조차 없어서 잔뜩 샘이 나는 모양이군..ㅎㅎ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땅을 팔았다]고 함은 [집을 팔았다]는 말인거 같은데
중국의 땅은 팔지 못합니다.
국가/집체에 반납할수는 있어도 [땅을 팔았다]고 하면 중국에서 위법입니다.
|
|
|
|
|
청풍낙엽 114
|
|
2009-09-08
|
|
|
땅 팔앗다는것은 땅의 사용권을 양도 했다는것으로 봐야죠.
중국에선 땅매매가 불가능하죠...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중국에서 땅(농지)을 팔고 사던데..
한국에 있다가 고향에 들어간 잘아는 한 사람이 논을 얼마간 샀다고 자랑하던데..
나도 언론을 통하여..개인소유제 실시한지 몇년 된걸로 들었고..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머구리 아닌 머구님 넵~ 중화는 땅하고 거리가 먼 생활을 합니다.
중화의 땅이 아니지만 중화의 땅처럼 쓸수 있는 땅이 쪼금은 있답니다.
중화가 귀농할적에 놀러오세요 다른것은 몰라도 꼬량주는 디질때가지 드릴게요.
|
|
|
|
|
水晶 21
|
|
2009-09-08
|
|
|
물론 개인소유가 아니라는 건 알죠.
하지만 실제로 농촌의 집과 땅을 판 다음 아무런 "소유권"이 없는 사람 많지요.
그걸 법적으로 돌려 받을 수 있어요?!
머구님, 인력거만 부르면 곧장 쉽고. 싸게 찾아가실 수 있었을 텐데요.
중화님, 비꼬는 말씀하시는군요.
그 귀한 땅을 팔고 도시에 아파트를 사는 날부터 빚쟁이가 되죠.
연길에서 살려면 .......
옛날엔 10만원이면 한평생을 살 큰 돈이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백만을 가진 사람도 절대로
평생을 맘 편히 못사는 세상이죠.
언젠가는 그 백만원이 (인민페)오늘의 만원값 밖에 가지 않을수도 있으니깐요.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
|
|
|
|
청풍낙엽 114
|
|
2009-09-08
|
|
|
나도 고향에 내 명의로 두무되는 땅은 있는데... 한족이 일년에 식량얼매
내놓으면서 농사 짓고 있음.... 한 전가족 한쌍되는 땅에 농업부조로 천여원
나왔다고 들엇음...지금 농사지면 세금도 없고 부조까지 나옴..
단 부조는 땅 소유권을 가진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실제 농사 짓는사람은
못 가질수 있다는거...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중화가 꼬량주내밀면..나도 짝태정도는 들고 가야쥐~
전원생활의 꿈을 실현하게 되면 연락 좀 주소...중화님 꼭 연락주세요..^^
|
|
|
|
|
청풍낙엽 114
|
|
2009-09-08
|
|
|
머구.. 소주마시는데 짝태... 그걸 국 끓이면 겐찬을라나??
중화가 70도 짜리 꼬량주 준비해둿다 머구 속 확타는거 느끼게 해야것다 ㅎㅎ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용드레우물이라는 말만 많이 들어서..
용드레가 어디있냐고 물어서 그런가요?
나중에 시장에서 할머니들께 물어보니 친절하게 롱췐이라고 해야 된다고 하던데..
바보같이 용드레가 어디냐고 물으니 그 취객들이 뒷걸음 쳣었나봅니다.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
청풍아~ 난 소세지 하나면 꼬량주 2병도 나발분다..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남북통일을 대비해서 연변의 땅만을 팔지 말지어다]
기발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절대 중국실정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인거 같아 여쭈어봤습니다.
개인주택같은 부동산도 70년기한을 두고 사용권이 한정된 정책이니 완전한 소유권을 갖는거 아닙니다.
더구나 토지는 외국처럼 평생 혹은 자손 몇대까지 물려줄수 있는 재산인것이 아니라 농촌인구에만 해당한 개인의 집체토지 사용권 즉 재산소유권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농촌호구가 일단 도시로 이전질 경우 인당 토지는 자동적으로 집체에 반납이 되고 그 어떠한 처분의 없습니다.
즉 수정님이 한국으로 귀화할 경우 토지는 자동적으로 국가에서 회수하며 남북한 통일을 대비한 연변인구의 토지둔작은 대낮에 꿈을 꾸는 허연 소리에 불과합니다.
|
|
|
|
|
청풍낙엽 114
|
|
2009-09-08
|
|
|
듣자니 안동소주 도수 높다던데?? 그것도 두병 나발부냐??
하기사 비싸다던데... 아까버서 그렇게 먹겟나만 ㅎㅎ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청풍납엽같은 경우,
농촌인구가 도시에 체류할 시 농촌호구에 해당한 토지사용권은 아직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타인에게 땅을 부치는(즉 임대) 형식으로 일정한 보수를 받는거 가능합니다.그러나 집체에서 국가의 사용목적으로 땅을 회수한다고 할때는 무조건 반납(강제회수)이며 그에 따른 일정한 보상이 따르긴 합니다.
혹시 이걸 가리켜 땅을 매매한다고 착각하실지 모른데 개인의 토지보유권리란 허무한 공상에 따를뿐입니다.
|
|
|
|
|
연변 모두부 89
|
|
2009-09-08
|
|
|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
중화님 같은 분이 친절하게 해명드려야 마땅할 일인데 풍자소설로만 듣는다니 참 딱합니다.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토지법 얜밴에서 땅 팔았다고 말하지 빌려주었다고 말합디까?
참 희귀한 사람이네...
|
|
|
|
|
온달 71
|
|
2009-09-08
|
|
|
온달이 처음 중국동포를 생갈할때 아래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굳건하게 지켜지길 마음으로나마 응원합니다.
====================
살아있는 180만의 중국동포들은 불루오션인 중국에서의 귀한 인적자원이고 메드인 코리아의 홍보대사이다. 한국의 국익을 위하여 한국에 오래 거주한 중국동포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여 한국과의 끈을 놓아 한족으로 동화되는 일이 없게 하여야 하며, 그들에게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민주화 의식을 키워 주어야 할 것이다.
====================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군요 ^^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토지법 그래 당신도 허무한 공상에 따를 뿐이라 했구만.
환상소설로 보면 안되는가?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중화님/
중국 어느곳에서도 [땅을 판다]는 말은 없습니다.
무지몽매한 정도가 아니고서야 땅을 판다라고 난리를 치면 정부에서 귀가 많이 따갑겠습니다.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토지법 이곳에서 진실을 추구하시오?
토지법도 망상을 버리시오.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중화님/
님의 말이 어지간이 난해한 정도가 아니라서 알아볼수가 없습니다.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토지법 중화 주위 사람들 무지몽매해서
땅 팔고 상해 갓다거나 땅팔고 한국 갓다거나 땅팔고 연길 갓다고 말하는 같아요.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남북통일을 대비하여 연변의 동포들은 땅만은 팔지 말지어다. 통일하기 전까지 오지인 연변을 고집하기 보담 모두들 중국내륙으로, 세계로 뻗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
토지법 이 내용 어찌 생각하시오?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중화 주의의 사람들이 [땅을 팔고 가다]란 말은
토지사용권을 집체에 반납하거나 타인에게 임대를 하는 경우를 말하겠지요.
이만치 자상하게 설명할수밖에 없습니다.
땅팔고 상해간게 아니라 집팔고 사면발방으로 나간거겠지요.ㅎㅎ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중화가 토지법을 희귀한 사람이라 한것은 두가지 이유.
첫째 이곳에 당신같은 확실한 사람도 있구나.
둘째 이런곳에서 닉을 왜? 숨기고 수정님 글에 이런 얘기 할가?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그럼요 중화도 망상으로 보았기에 당신하고 그리 말한것이고.
멧돼지님이나 수정님 같은 분들이 있기에 이런곳이라 말했던것이고.
진실을 추구 하려면 이상한 분들 사라지고 토지법 당신같은 분들이 많아야 한다고 보오.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중화가 하도 심심하니깐
민족과 애국을 웨치는 조선족 골라서 욕지거리 하러 온기오.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
염병할 조선족들 그 누구처럼 어디 한번 민족과 애국을 해보시오.
|
|
|
|
|
토지법 194
|
|
2009-09-08
|
|
|
민족과 애국에는 모두 냉정한 가슴과 사고가 필요하다고 보기에 옥에 티나마 친절하게 찾아드린겁니다.
맹목적인 구호가 아닌 냉정한 분석과 사고는 중화님이 더 낫지 않을가생각합니다. 마음만 더 소중하다면 금상천화겠지만요.
빗으로 가르마내듯이 쪽갈라서 대치전을 벌이기보다 한중양국간에 다리놓는 작용을 하고 상호관계 개선에서 자신의 입지를 돈독히 하는게 조선족이란 군체로서의 최대효익이고 다른 무엇보다 자아반성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 예로 전대두님이 소중한 교감이 되여주시긴 했으나 은퇴를 하셨고
중화님같은 냉철한 사고력을 가진 분도 자연히 可为可不为의 도리가 선명하겠지만 마음처럼 표달을 하시지 않는것 같으니 아깝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적게 하고 来日方长이길 바라면서 이만요.
|
|
|
|
|
산들 253
|
|
2009-09-08
|
|
|
민족의 근을 놓지 않도록 동포들 에게 영주권 부여 하도록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동감 합니다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중화와 토지법 이 사람들 공론은 여기서 끝났나?
그럼..내가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려주지..
중국에서실제 땅을 팔고 살고 할 수 있다..땅 땅 땅!
|
|
|
|
|
水晶 15
|
|
2009-09-08
|
|
|
토지님, 자세한 설명 감사해요.
토지법님의 말씀 모두 맞아요.
제가 글에서 쓴 것은
연변에서 보통 말하는 집 팔고, 땅 팔고 도시로 , 해외로 나갔다는
말을 되풀이한거였어요.
중국의 땅은 모두 국가거에요.
도시의 집은 사실은 개인 소유가 된거나 마찬가지이고...70년후엔 어떻게 될는지?!
농촌의 땅은 집체소유이지요.
제가 떠도는 말을 들은데 의하면 집도 땅도 팔았다고 하던데
그 분들이 돌아가서 돈을 내 놓으면 다시 돌려 받을 수는 있을가요?!
물론 나의 주위에 그런 분은 없지만
우리 조선족들의 농촌땅이 다시 우리들의 손에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글쎄 호구가 모두 시내로 들어 갔으면 별수 없죠.
머구님, 중국은 한국과 완전히 틀려요.
뭐나 지금은 맘대로 팔고 살수는 있지만
땅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기에 국가 "맘대로" 겠죠?!
그래서 하루빨리 중국이 법치의 국가로, 민주주의 국가로
되어야 한국에서도 맘 놓고 투자할 수 있겠죠.
북한은 세계법이고, 국가법이고 없고
김정일의 마음이 법이기에
그런곳에 누구도 투자하지 못하겠죠?!
|
|
|
|
|
水晶 15
|
|
2009-09-08
|
|
|
토지법님께 물어 보고 싶어요.
제가 쓴 "연변의 동포들은 땅만은 팔지 말지어다.
는 틀린 말이에요.
조선족농민들이 시내로 진출하고, 해외로 나갈때
땅과 집을 어떻게 해야 좋을가요?
청풍님처럼 임대해 주면 좋겠죠?
제 글을 수정하고 싶은데 어찌할지 모르겠군요.
|
|
|
|
|
쌈싸먹어 110
|
|
2009-09-08
|
|
|
20대 아가씨의 문체로 항상 글을 쓰시는 수정님의 글에 음악하나 보탭니다.
Souvenirs D'enfance 인데 번역하자면 유년시절의 추억정도가 되겠네요..
글을 읽다 문득 어울릴것 같아 올리고 갑니다.
|
|
|
|
|
水晶 15
|
|
2009-09-08
|
|
|
쌈사님,
과찬에 어쩔줄을 모르겠군요.
음악 감사해요.
모두들 좋은 저녁 되세요.
충만한 삶을 사시구요.
|
|
|
|
|
水晶 15
|
|
2009-09-08
|
|
|
지금 댓글을 읽어보니 중화님은 영 아니시군요.
토지님의 진지한 옳은 글에 왜서 저렇게 떠든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실가요?!
중화님, 토지님의 이 위에 글들과 담배쥐골님의 댓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
|
|
|
|
중화 79
|
|
2009-09-08
|
|
|
수정님 님의 뚱단지 같은 말에 대한 해석이나 해주세요.
얜밴인 스럽게서리...
|
|
|
|
|
머구 206
|
|
2009-09-08
|
|
|
중화님아~ 니 수정누나에게 감정이 있구나..
다 큰 놈이 우유먹고 싶어 안달난 애같아서 안타깝다야~
|
|
|
|
|
홍길동 188
|
|
2009-09-08
|
|
|
똑 같은 나라 법률 범위내서
왜 남방 사람들은 그렇게 잘 살고 잘 벌어 먹고 해왔는지
다들 반성 해봅시다.
맨날 쓰잘데기 없는 변명거리나 끄집지 말고.
뭐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