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뉴스 (전체 759건)

연해주 방문기
2006-05-15
조회수 1,175

1.

러시아 여행은 처음이다. 러시아라지만 연변에 맞붙어있는 연해주가 아닌가. 러시아에 속해있는 연해주는 중국의 연변과 과연 어떻게 다를까. 중국에서 러시아로, 버스길로 연속된 공간을 천천히 이동해가면서 다름에 대한 상상과 기대는 식욕보다 커갔다.

땅은 드넓고, 바람이 세차다. 연해주 땅에 들어서서부터 나설 때까지 쭉 이 느낌이었다. 또 춥다. 기온이 연길보다 3, 4도는 낮은 것 같다. 거칠 것 없이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까? 연해주를 자주 들락거리는 연길의 한 친구에게 날씨를 물었을 때 씩 웃으며 "차부둬!"라길래 두꺼운 옷을 준비하지 않은 게 곧 후회가 됐다.

   
▲ 러시아에서 아주 작은 주에 지나지 않는 연해주이지만, 이렇게 드넓은 평원이 계속 펼쳐진다. 이 넓은 땅이 대부분 그냥 버려져있는 것이 놀랍다.

이렇게 넓은 땅이 그냥 버려져있다니... 빗물로 질척거리는 비포장구간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찻길을 빼곤 인적 없는 나지막한 산과 황량한 벌판, 습지가 계속 펼쳐진다. 만주의 할빈에서 장춘과 심양을 지나 대련까지 펼쳐진, 인간의 이악스러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빈틈없는 옥수수 밭과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내내 그랬다. 우수리나 블라디와 같은 도시, 농촌 마을 부근에만 경작지가 간간이 눈에 띌 뿐, 대부분의 평원이 그냥 방치되어 있다. 맞붙은 연변과 연해주인데 경작지의 유무가 이토록 판이한 풍경을 연출한다는 것이 놀랍다.

다름의 느낌이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 것은 인적을 발견하면서였다. 몽환 속 같은 빗길을 한참 달려 처음 마주친 생소한 사람과 집, 글자 모양, 이 세 가지만으로도 연해주는 중국에 맞대어 있는 땅이라기보다는 아득히 먼 서양의 어떤 지방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쩜 중국과 이렇게 다른지...

   
▲ 전형적인 러시아 농가

얼마 간 머무르던 중국 땅에서 러시아 땅으로 건너가서 그런지, 자꾸만 중국과 비교가 된다. 중국 농가는 성냥곽을 모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에다 흙먼지가 두터운 붉은 벽돌 일색이라면, 이 곳은 목재가옥과 벽돌집이 적당히 섞여있는데 저마다 컬러풀하고 모양도 개성이 있다. 담과 벽, 지붕이 낡은 집도 많지만, 지저분한 느낌은 별로 들지 않고, 집 주변이 잘 정리되어있는 편이다. 집마다 벽과 창가는 다양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창턱엔 어김없이 꽃이 놓여 있다. 중국 농촌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던 농촌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서양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는 느껴진다. 이런 농촌이라면 한 동안 살면서 휴식하고픈 맘도 든다.

도시 사람뿐만 아니라 허름한 농가를 나서는 이들도 한결같이 용모와 옷차림이 단정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옷맵시가 나는 건 옷의 브랜드 따위완 상관없이 타고난 늘씬한 몸매 탓일거라고 멋대로 짐작해본다. 표정도 대체로 느긋한 편이다. 한적한 농촌마을길에서 낯선 동양인인 나를 마주치고도 경계나 호기심의 표정이 노골적이지 않다. 눈길이 마주치면 내가 지인이라도 되는 듯이 미소 띤 얼굴로 가볍게 눈인사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인구 밀도가 매우 낮지만, 도시에 차가 많은 편이다. 특히 블라디 중심가는 교통체증이 만만찮다. 그래도 차와 사람이 마구 뒤엉키는 무질서와 자동차 크락숑의 신경질적인 소음이 없다. 거리는 난폭하지 않고, 차와 사람들의 움직임은 유유하다.

러시아의 첫인상은 이렇게 호감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눈으로만 보다가 막상 그 속으로 들어가 한 발짝이라도 움직일라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하지 않아 벙어리나 다름없고, 글자도 읽을 수 없는 장님 신세가 아닌가. 테러 예방을 위해서라는데, 경찰의 검문도 많다. 하지만 과거 통제사회의 흔적이고, 또 새롭게 뇌물의 텃밭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가는 월 2, 3백 불 정도의 소득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싶을 정도로, 아니 어떤 품목들은 한국과 비교해도 만만찮게 비싸다. 땅이 너무나 넓다보니 그럴까, 아니면 선조의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그럴까, 땅에 뿌리내리는 농사에 악착같은 마음이 없단다. 구 소련이 붕괴하면서 집단농장을 개인에게 불하했을 때, 땅 관리가 귀찮고 비용이 든다고 투덜거리며 반납하기까지 한 그들이란다. 하긴 원래 농사지을 땅을 찾아 시베리아를 지나 극동의 이 곳까지 온 그들이 아니다. 정부가 파견한 군인, 공무원 가족, 상인이 대부분이고, 옛적에 이 곳에 처음 발을 디딘 개척자와 탐험가의 자손도 더러 있을 것이다.

각 부분이 서로 복잡하게 의존하는 계획경제가 마비되면서, 특히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 곳은 여기저기 빈틈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그 빈틈은 중국, 한국, 북한, 일본과 같은 이웃 나라들과의 거래에 눈 돌리게 했을 것이고, 그 나라 사람들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동포를 포함한 중국인의 러시아 장사와 고려인의 귀환, 북한 노동자의 고용, 한국기업의 진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

우수리스크 버스 터미널에 동북아평화연대의 김승력 국장이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오기로 했으니, 일단 거기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혼자 길을 나서서 훈춘 장령자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출입국을 통과해가야 하는 9시간의 긴 여정은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나에겐 사실 스트레스였다.

실제로 러시아 국경출입국 심사대에서 노란 머리 키 큰 여자가 순전히 러시아 글자로만 쓰인 입국카드를 내밀 땐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망연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일행 속에서 반가운 조선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러시아에 장사하러 들락거리는 동포들이다. 러시아 관리 앞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주눅들지 않으려고 한두 마디 영어를 지껄이기도 했지만, 그냥 동포들에게 묻기도 하고 눈치껏 따라 하니 성가신 입국 절차를 별 문제없이 마칠 수 있었다.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본토인의 눈길 속에서 중국동포들이 악착같이 뚫어놓은 ‘러시아 드림’의 길 덕을 나 역시 얼마간 본 것이다.

   
▲ 우수리 중국시장

중국동포들의 ‘러시아 드림’ 현장을 둘러보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우수리 중국시장에 들어서니, 중국의 어느 큰 도시 시장에 온 것처럼 크다. 온갖 일용 잡화에서 과일, 채소, 식당.. 안 파는 것이 없다. 낮시장과 밤시장이 꼬박꼬박 번갈아 열리는 이 시장에서 만난 길림시에서 왔다는 동포 아주머니는 이 시장의 상인 절반 가량이 동포란다. 매대 윗층에 있는 하꼬방 같은 숙소에서 잠자며, 러시아 명절을 빼곤 일요일도 없이 거의 일년 내내 일한다고 한다. 그래서 버는 돈이 일 년에 인민폐로 10만 원 정도, 중국에서 직접 인형, 액세서리 따위를 도매로 떼와서 팔기 때문에 자기는 벌이가 좋은 편이란다.

   
▲ 집이 길림시에 있다는 동포 아주머니

시장 한 켠의 채소, 청과물 매대는 동포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일 천 톤 가량의 어마어마한 물량이 중국에서 들어오는 과일, 채소 도매시장이 있는데, 시장 상인들은 여기서 물건을 떼온단다. 연해주의 채소와 과일 시장은 저가의 중국산이 점령하고 있다. 주로 흑룡강성 동녕, 수분하 통상구를 통해 물건이 들어오는데, 여기에 중국동포들의 역할도 크다고 한다. 동녕 삼차구 조선족촌에서 생산된 채소를 들여온 중국동포들이 고려인과 협력하여 연해주 내 중국 농산물의 수입과 유통을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는데, 이제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각종 소비재 수입으로까지 고려인과의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연해주로 돌아온 무일푼의 고려인들이 초기 정착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흑룡강성 동포들의 이 같은 도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입에 발린 구호를 무색케 하는 살뜰한 민족 경제 네트워크가 아닐 수 없다.

   
▲ 우수리 시내의 한 가두 시장에서 만난 고려인 현예까떼리나 할머니

값싼 중국 농산물의 공세는 텃밭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가는 고려인들 얼굴에 주름을 늘리기도 한다. 우수리 시내 번개 시장에서 만난 현예까쩨리나 할머니. 우즈벸에서 살다 8년 전에 연해주로 왔다는 이 할머니는 편안한 얼굴을 한 분이지만 두 가지 걱정이 있단다. 중국 농산물 때문에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과 자식 걱정. 자식이 둘인데, 둘 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번듯한 직장에 취직이 잘 안 된다. 자신은 이제 다 살았으니 일 없지만, 젊은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란다.

중국 농산물의 공세를 이겨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는 고려인 정착 지원 활동을 펼치는 동북아평화연대 현지 일꾼들에게도 지워져있다. 주식인 곡류와 콩 농사는 이미 기계화, 집단화되어 있고, 중국의 저가 농산물까지 밀려들고 있는 상황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거의 없는 무일푼의 고려인들이 자립, 자활하자면 품질과 가격에서 차별화 되는 자연농법을 보급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직은 초기 실험 단계이지만, 고려인 우정마을과 끄레모바 마을의 고려인 농업 지도 활동에 전력하는 김현동씨는 고려인 동포들의 저력에 깊은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낙관한다.

   
▲ 끄레모바 마을의 한 고려인 집에서 올해 농사 계획을 의논하고 있다.

“원래 고려인은 러시아에서 ‘농업민족’이라고 불렸다. 이 분들은 어떤 험난한 조건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지금 이 분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다시 농업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능력이 없다면, 이 사업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은 것이며, 우리가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중국인들의 상업활동을 고마워해야 할 러시아인들이지만 ‘기따이스키’들을 대하는 ‘마우재’들의 속내는 좀 복잡한 것 같다. 러시아를 통털어 중국인들의 숫자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5백만 명은 되지 않을까 한단다. 그 넓은 러시아 땅에 중국인들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란다. 연해주, 극동지방이 소리 없이 중국인들에 의해 점령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깊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연해주가 화제에 오르면, ‘그 곳은 청나라 때 해삼위였는데...’ 라며 대개 여운을 남기지 않는가. 작년 한 해만도 러시아 출입국 관리법이 세 차례나 바뀌었는데, 주로 중국 불체자들을 겨냥한 것이란다. 연해주는 한반도 면적의 4/5나 되지만 인구가 고작 2백 만인데 그나마 자꾸 줄어들고 있다니, 연해주의 앞날을 두고 러시아 중앙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런 상황이 우리 민족에게는 얼마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고려인 연해주 귀환과 러시아 국적 회복에 러시아 정부가 협력해 나서고, 한국 기업의 유치와 북한의 벌목, 건설 노동자의 도입에도 적극적이며, 한국 NGO와 선교 단체의 활동에도 관대한 편이다. 삼성과 LG광고가 블라디 시가지를 온통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고, 버스는 대개 눈에 익은 한국제다. 농업 쪽의 진출도 활발하여 남양알로에, 대경, 한일, 고합, 세모 그룹 등의 민간기업과 과거 장덕진씨의 대륙연구소, 새마을중앙회, 경기도 한농련 같은 단체가 관심을 가졌고, 또 현재 동참하고 있다.

   
▲ 거리를 활보하는 승용차는 대개 중고 일본차인 반면, 버스는 한국제다. 우수리스크에서 연길로 돌아올 때 탄 버스

특히 종교단체인 대순진리회의 아그로 상생 농장은 놀랍다. 지금까지 190억을 투자하여 8만 헥타의 농장을 확보하였는데, 소문에 앞으로 모두 천억 원을 투자하여 엄청난 규모의 농지를 매입할 계획이란다. 단기간의 자금 회전에 급급하지 않아도 되는 종교단체이기에 가능한 투자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계획대로라면 가히 왕국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크기의 농장이 조성되는데, 미래 한반도의 통일을 내다본 식량 안보 차원의 포석이란다. 강남 아파트 30평이 10억 원을 호가하는 이 좁은 땅에서 저마다 부동산 투자로 한 밑천 잡으려고 악다구니를 쓰고있는 상황에서, 일찍이 연해주로 눈을 돌린 사람들은 정말 속이 깊어 보인다.

중국, 특히 러시아에서 한국 선교단체의 족적을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연변에도 동포 교회가 많이 세워졌고, 그리스정교를 믿는 러시아이지만 한국 개신교 교회가 우수리 시내에만도 12 곳이 된다. 우수리 시장에서 만난 한 중국동포 아주머니도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대뜸 하는 말이 “교회분임까? 나도 교회 나감다.”이런다. 이미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하여 외국으로,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동포사회로 눈을 돌리는 선교단체가 많다. 그 누구보다 먼저 진출한 이들이 과연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동포들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또 민족이라는 주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활동의 결과가 동북아 한민족 네트워크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은 많지만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교회에 다니는 동포들은 이유는 제쳐놓고 고국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는 드문 것 같다...

피끗 둘러본 데 지나지 않는 연해주 여행기를 더 이어가는 건 우스울 것 같다. 땅은 낮고 하늘은 너른 연해주의 들판에 서니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이 땅에 대한 호기심과 그리움이 더욱 짙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서양이지만 벌써 150여년 전부터 동북아시아의 한 이웃이 되어 있는 러시아,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네들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가 없고, 온기 있는 교감을 할 수 없었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꿈꾸듯이 언젠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쉬엄쉬엄 가면서 이 거대한 대륙과 교감해볼 수 있겠지..

   
▲ 1937년의 비극적인 고려인 강제이주가 시작된 라즈돌로네 역 모습. 이 곳에 모인 17만명의 고려인들은 어디로, 얼마 동안,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기차에 올라 험난한 이주의 길에 올라야 했다.

   
▲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톡 역


백일홍

연변통신 2006-05-15

 
작성자 비밀번호  


한밤 마을의 만추(晩秋)
오봉두.오윤주.오윤심 가족을...
사람찾기
사람찿아주세요
 

(우 706-824) 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 806-52 TEL : 053-428-1176
Copyright 2007 연변통신 All Rights Reserved. Mail:webmaster@yanbianforum.com